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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17의 게시물 표시

1장 런던에서 야파까지(5)

1장 런던에서 야퍄까지(5) 인사와 입맞춤 (Salutations and Kisses) 1900년대에 빨래하는 아낙네, 나사렛에서촬영 우리가 낮은 문으로 들어가자 안뜰이 나왔는데 , 그곳에서는 한 무리의 흑인 여인들이 분주하게 빨래를 하고 있었다 . 그들은 내게 와서 나의 손을 잡았다 . 그러고는 입을 맞추고 심지어 자신들의 까만 이마에 대었다 . 낯선 행동에 바짝 긴장하며 그들이 포옹하기 전에 손을 얼른 예의바르게 거두었다 . 여기서는 이런 행동이 나는 당신에게 복종하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 만일 입맞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의 겸손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내게 용서를 바라거나 , 보호 혹은 호의를 요청하기 위해서 손이나 발에 입맞춤하려 할 때도 있다 . 만일 입맞춤을 거부한다면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표시다 . 또 일반적으로 이곳 사람들은 사제들에게 아무런 이의 없이 경의를 표하고 , 사제들 또한 늘 이런 인사를 받아들인다 . 그래서 그런 호의적인 인사를 늘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을 “ 큐리 ( Khouri )”― 사제 ― 라는 * 별명 ( sobriquet ) [1] 으로 불렀다 . 우리는 돌층계를 따라 테라스에 올라섰는데 두 개의 방이 있었다 . 우리는 희게 칠한 예쁘고 작은 정방형의 첫 번째 방에 들어갔는데 , 분홍색과 흰색의 모슬린 천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 한쪽 구석에 침대에는 약 1 야드 (0.9m) 폭의 좁고 긴 매트리스가 놓여 있었는데 그 좁은 매트리스는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 다마스크 (damask) [2] 로 덮인 쿠션이 벽에 기대어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거실에서 (lounge) 편안히 쉴 수 있었다 .   벽면에 붙은 매트리스에앉아 수업하는 아이들  또 터키 카펫이 돌바닥을 가린채 놓여 있었다 . 몇몇의 부인들이 디반 (divan) 에 터키 식으로 ( à la Turque ) 앉아 수연통 ― 방 한가운데에 거...

1장 런던에서 야파까지(4)

1장 런던에서 야파까지(4) 영국 영사관 (English Consulate). 우리는 좁고 무너지다시피 한 계단 길을 내려가 , 그때 그 당시에 해안과 가까이 있던 영국 영사관까지 갔다 . 우리는 친절한 환대를 받았으며 , 광장으로 이어진 뜰을 지나 둥근 천장이 있는 돌방으로 안내되었다 . 그 방에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조잡하게 만들어진 두 쪽 여닫이창이 있는 발코니가 있었다 . 건물은 낡았지만 안락한 방석이 놓여 있는 디반 (divan) [1] 과 터키 카펫이 있어서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 거기에 가서야 비로소 검역소에서부터 계속된 긴장으로부터 해방되었다 . 특히 시리아 출신으로 동양의 격식을 갖춰 후하게 대접하는 카야트 부인 (Mrs. Kayat) 은 더할 수 없이 편안하게 해주었다 . 그녀는 “ 이 집은 여러분의 집이에요 .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 라고 말했다 . 1850년에 스케치한 팔레스타인 가정 그녀의 여동생 푸라 (Furrah) 는 베이루트 (Beirût) [2] 의 미국 미션스쿨에 다닌 덕으로 영어를 꽤 잘했다 . 그녀는 흰 모슬린 (muslin) [3] 옷을 입고 있었는데 , 허리부분은 개방되었고 , 그녀의 목과 가슴을 숨기지 않는 얇은 망사 셔츠를 드러내었다 . 푸른 비단으로 만든 그녀의 넉넉한 터키 바지를 반투명한 치마를 통해 볼 수 있었다 . 그들의 어머니는 은색으로 솔기를 댄 검정 벨벳 재킷과 부드럽고 흰 비단 치마를 입고 있었다 . 많은 신사들이 아래의 방에 있었다 .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남자든 숙녀든 모두 물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 우유를 타지 않은 진한 커피가 차례로 돌려졌다 . 손잡이가 없는 작은 잔에 담겨 있었는데 , 보통 삶은 달걀을 넣는 컵과 모양과 크기가 똑같았다 . 잔은 은으로 줄새김한 받침에 받쳐져 주었다 . 잔을 받은 후 , 머리를 약간 숙이고 , 손을 이마까지 올려 주인에게 인사하는 것이 관례이다 . 주인도 답례로 손님에게 똑같이 ...

1장 런던에서 야파까지(3)

1장 런던에서 야파까지(3)     야파에서의 아침식사(Breakfast in Yâfa).   안뜰로 향한 우리 방 외에도 검역소에는 두 개의 방이 더 있었다. 하나에는 모슬렘 여행객들이 머물렀고, 다른 방에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순례자들이 차지했다. 검역소 안뜰은 그늘이 져서 방보다 시원했다. 그래서 다들 거기로 나와 아침을 먹었다.   모슬렘들은 식사 전에 손과 발에 물을 부어 대략 씻은 다음에 카펫을 펼쳐놓고 기도했다. 그런 후 쌀, 버터, 그리고 토마토로 만든 요리 주위에 둘러앉아서 접시에 놓인 음식에 여럿이 손을 넣어 집어 먹었다. 그들의 식사 시간은 짧았고 중간에 대화도 거의 없었다. 식사를 하고나서 손을 씻고, 긴 담뱃대(chibouques)와 수연통(水煙筒, narghilés)을 피워 물었다. 1920년 물담배를 피우는 사마리아인 불어, 이태리어, 그리고 스페인어를 하는 수사들은 설탕절임(conserves)과 시럽을 곁들인 식사에 우리를 초대했다.   한낮의 열기가 지나 검역관과 동행하는 조건으로 산책을 허락받았다. 검역관들은 우리가 일반인과 접촉하는지 감시할 목적으로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취하기 위해 우리를 따라왔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감옥(prison, 저자는 검역소를 감옥으로 표현했다―옮긴이) 계단을 내려가서 넓은 모래사장에 도착했다. 태양은 지고 있었고, 바다와 하늘은 어둑어둑해졌고, 야파(Yâfa)의 흰 벽들은 붉게 물들어갔다. 우리는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군데군데 쌓인 모래 언덕들을 보았다. 우리 왼쪽에는 약간의 초목이 있었고, 오른쪽에서는 파도가 치고 있었다. 우리는 모래 해변을 걷다가 반쯤 묻힌 낙타 뼈와 많은 조개, 그리고 오징어의 뼈들을 발견했다. 검역소에서 약 1마일(1.6km) 쯤 나아가니 부서진 조개들로 완전히 가득한 해변이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