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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런던에서 야파까지(3)


1장 런던에서 야파까지(3)
 
 
야파에서의 아침식사(Breakfast in Yâfa).
 
안뜰로 향한 우리 방 외에도 검역소에는 두 개의 방이 더 있었다. 하나에는 모슬렘 여행객들이 머물렀고, 다른 방에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순례자들이 차지했다. 검역소 안뜰은 그늘이 져서 방보다 시원했다. 그래서 다들 거기로 나와 아침을 먹었다.
 
모슬렘들은 식사 전에 손과 발에 물을 부어 대략 씻은 다음에 카펫을 펼쳐놓고 기도했다. 그런 후 쌀, 버터, 그리고 토마토로 만든 요리 주위에 둘러앉아서 접시에 놓인 음식에 여럿이 손을 넣어 집어 먹었다. 그들의 식사 시간은 짧았고 중간에 대화도 거의 없었다. 식사를 하고나서 손을 씻고, 긴 담뱃대(chibouques)와 수연통(水煙筒, narghilés)을 피워 물었다.

1920년 물담배를 피우는 사마리아인


불어, 이태리어, 그리고 스페인어를 하는 수사들은 설탕절임(conserves)과 시럽을 곁들인 식사에 우리를 초대했다.
 
한낮의 열기가 지나 검역관과 동행하는 조건으로 산책을 허락받았다. 검역관들은 우리가 일반인과 접촉하는지 감시할 목적으로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취하기 위해 우리를 따라왔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감옥(prison, 저자는 검역소를 감옥으로 표현했다―옮긴이) 계단을 내려가서 넓은 모래사장에 도착했다. 태양은 지고 있었고, 바다와 하늘은 어둑어둑해졌고, 야파(Yâfa)의 흰 벽들은 붉게 물들어갔다. 우리는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군데군데 쌓인 모래 언덕들을 보았다. 우리 왼쪽에는 약간의 초목이 있었고, 오른쪽에서는 파도가 치고 있었다. 우리는 모래 해변을 걷다가 반쯤 묻힌 낙타 뼈와 많은 조개, 그리고 오징어의 뼈들을 발견했다. 검역소에서 약 1마일(1.6km) 쯤 나아가니 부서진 조개들로 완전히 가득한 해변이 나타났다. 이런 조개와 모래로 뭉쳐진 덩어리들이 모두 비슷하게 보였지만, 어떤 것들은 오래되어 마치 대리석만큼이나 단단하고 견고했다. 하지만 쉽게 부서지는 것들도 있었다. 그런 더미들에서 아직 굳지 않은 조개들은 힘없이 모래와 분리되어 나뒹굴었다. 태양이 제법 사라졌을 때, 검역관은 집으로(homeward, 검역소―옮긴이) 돌아섰고 우리는 그의 뒤를 고분고분히 따라갔다. 마을에는 이미 불이 밝혀졌으며, 불빛은 정박 중인 배들에서 잔잔한 바닷물 위에 반사되었다. 이 위도에서는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이미 별들은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노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의 요리사이자 웨이터인 소년 하나가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저녁은 뽕나무 아래에 펼쳐졌다. 가까이 있는 큰 돌 위에 올려둔 랜턴에서 나온 불빛으로 요리들이 번들거렸다. 소년은 굵고 짠 소금을 매끈하면서도 속이 빈 조개 껍질에 담아 놓았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그의 재치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갈대 매트에 앉았다. 3/4인치(1.9cm) 정도나 되는 붉은 개미들이 주위에 떼를 지어 있었고, 어디에선가 고양이들도 우리의 음식 냄새를 맡고 어두운 곳에서 달려 나왔다.
 
주위에는 성지순례자들과 베두인들(Bedouins)이 노숙하고 있었으며, 주변 건물들의 평평한 지붕이나 테라스에는 매트리스가 놓여있었다.
 
시설(establishment, 검역소를 가리키는 말―옮긴이)에는 여성 하인이 없었고, 우리와 함께 격리된 동료죄수들(fellow-prisoners, 검역소에 같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옮긴이) 사이에도 여자는 없었다. 동생이 담배를 물고 별빛 아래로 산책하러 간 사이, 나는 우리 방을 가능한 한 편히 쉴 수 있도록 이것저것 손봤다. 나느 불편함으로부터 오락거리를 찾아냈고, 문명화된 생활에서 실제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매우 유익한 교훈을 얻었다.
 
다음날 프랑스인인 검역관 의사가 우리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를 방문하겠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곧 그는 공식 수행원 세 명을 대동하고 작은 안뜰에 나타났다. 알았다. 그들은 검역소에 있는 우리와 다른 재감자(在監者)와의 접촉에 조심하면서 우리가 머물고 있는 방 앞으로 왔다. 그는 우리의 건강한 모습을 크게 칭찬하면서 검역소에서 가장 좋은 방을 얻은 것을 축하했다. 그것도 독방으로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품위 있게 격식을 차려 인사하면서 떠났다. 그는 손키스를 보내면서, “내일 여러분에게 입항 허가증을 발급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7월 3일, 일곱 시 삼십 분에 우리는 마침내 자유롭게 되었다. 우리는 검역소 뒤편의 계단을 즐겁게 올라가 넓은 묘지를 가로질러 마을 밖에 있는 큰 건물인 영국 정부의 창고를 지나갔다. 그곳에는 한 무리의 낙타들이 짐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베일과 흰 옷을 두른 여인들이 오디열매와 포도를 담은 바구니들을 균형을 잡아 머리 위에 이고 무리지어 서 있었다. 우리 왼쪽에는 야파(Yâfa)의 해자(垓字)와 총안(銃眼)이 있는 흉벽(胸壁, battlemented)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오렌지나무, 레몬나무, 야자수, 그리고 석류나무들이 모래바닥에 체크무늬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우리는 곧 마을 문 밖에 있는 큰 길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낙타와 농부, 노새와 노새몰이꾼들이 모여 있었고, 과일과 야채를 파는 부산한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터번과 터키모자를 쓰고(tarbouched)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점포와 텐트들이 큰 나무들 아래에 있었다. 커피, 셔벗(sherbet), 그리고 주위에 있는 수백 개의 파이프 담배와 수연통에 즉시 불을 붙일 수 있는 이글거리는 숯을 팔며 이리저리 이동하는 노점상들은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였다.

1900년대 야파의 시장

마을로 들어가는 아치 밑의 통로를 통과할 때, 우리는 어지럽게 놓인 낙타 밧줄에 얽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어야만 했다. 시장은 작열하는 태양을 피할 쉼터를 제공했는데, 그로 인해서 대단히 기뻤다. 야파(Yâfa)의 시장은 건물들 사이에 난 길 위로 천이나 그늘막을 널어놓아 그늘을 만들었고, 그 양편으로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긴 아케이드 형식이었다. 노란 모로코 슬리퍼를 잘라 구두를 만드는 사람들, 금 자수로 우아한 모양을 만드는 재봉사들, 긴 담뱃대를 만들기 위해 붉은 진흙 대롱을 빚는 파이프를 만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은 모두 땅에서 약 2피트(61cm) 정도 높이의 작은 평상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이 저잣거리의 다른 부분에는, 알레포(Aleppo)와 다마스쿠스(Damascus)의 비단, 맨체스터(Manchester)의 면(cottons),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과 스위스(Switzerland)의 베일들이 판매를 위해 진열되어 있었다. 수심을 띤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는 가게 주인들은 화려한 상품들 사이에 편하게 기대어 있었다. 이발소와 커피숍들은 다른 곳들보다 훨씬 더 크고 손님들이 빈번했다. 나는 저잣거리에서 여자들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거룩한 곳(the Holy Land)의 마을들에서는 오직 남자들과 소년들만이 상거래를 할 뿐이었다.

1900년대 팔레스타인의 커피하우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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